싱가포르 주말 공원 풍경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싱가포르의 일요일, 도심 곳곳의 공원과 광장에는 다채로운 언어와 웃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다수의 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고, 음악을 틀고, 때로는 배드민턴이나 배구 같은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인도 등에서 온 이주 가사노동자들로, 싱가포르 인구의 약 4.6%, 노동력의 7.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고용주 가정에서 가사, 육아, 간병 등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일요일 하루만큼은 자신들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공원으로 나옵니다.
왜 일요일마다 공원에 모일까? — 단 하루의 자유와 공동체
싱가포르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대부분 고용주 집에서 함께 생활합니다. 법적으로 최소 월 1회, 보통 주 1회의 휴일(주로 일요일)을 보장받지만, 이마저도 고용주의 재량에 따라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하루는 그들에게 유일하게 자유롭게 외출하고, 친구를 만나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들은 공원에서 모여 고향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고, 가족에게 송금할 돈을 보내며, 각자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스트레스를 해소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돈을 보내고, 음식을 사 먹고, 그냥 앉아서 이야기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고향 사람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라는 한 여성의 말처럼, 이 시간과 공간은 그들에게 심리적 안식처이자 공동체의 힘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공원이 ‘작은 고향’이 되는 이유
싱가포르 곳곳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작은 고향’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버마 출신 노동자들은 ‘Little Burma’라 불리는 페닌슐라 플라자에,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시티 플라자 주변 들판에, 필리핀 여성들은 럭키 플라자 인근 보행로에 모입니다. 이곳에서 이들은 고향의 음식과 문화를 공유하고, 서로의 소식을 나누며, 다양한 활동을 자발적으로 조직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기획한 식물 산책, 요리 교실, 문화 전시회 등도 열리며,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싱가포르 사회와 나누는 창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공원은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이방인 여성들이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타지에서의 삶을 견디는 힘을 얻는 곳입니다.
스포츠와 놀이, 그리고 연대의 힘
공원에서 가장 활기찬 장면 중 하나는 배구, 배드민턴, 노래와 춤 등 스포츠와 놀이가 펼쳐지는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여성들이 주도하는 배구 리그는 단순한 여가활동을 넘어, 서로를 돌보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동료나 가족을 돕기 위한 모금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자발적으로 조직된 이런 활동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심리적 회복과 소속감을 제공하고, 때로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공원 이용은 항상 안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소음 민원이나 도시 개발로 인해 공간이 제한되거나, 이용이 불안정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공원에서 모여, 서로를 지지하고,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송금, 자립, 그리고 가족을 향한 마음
일요일 공원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장면은 송금 창구 앞에 길게 늘어선 여성들입니다.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싱가포르에서 번 돈의 상당 부분을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합니다. 이 돈은 가족의 생계, 자녀 교육, 부모의 병원비 등 다양한 용도로 쓰입니다. 그들에게 일요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책임과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또한, 공원에서의 만남은 정보 교환과 자립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법적 권리나 복지 정보,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공유하며, 때로는 노조나 시민단체와 연대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도 만들어집니다.
싱가포르 사회와 이주여성 공동체의 미래
싱가포르의 이주 가사노동자들은 도시의 숨은 일꾼이자, 다양한 문화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주체입니다. 그들이 주말마다 공원에 모이는 풍경은 단순한 여가의 장면이 아니라,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과 차별, 그리고 연대와 희망이 교차하는 특별한 사회적 현상입니다.
이들의 존재와 목소리가 더 많이 알려지고, 공공 공간에서의 권리가 보장될 때, 싱가포르는 더욱 포용적인 도시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녀들이 없었다면 싱가포르의 일상은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한 시민의 말처럼, 이주여성들의 삶과 연대는 싱가포르 사회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돈을 보내고, 음식을 사 먹고, 그냥 앉아서 이야기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고향 사람들과 쉽게 만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다.” — 싱가포르 공원에서 만난 이주 가사노동자
이처럼 싱가포르의 주말 공원은 이주여성들에게 단 하루의 자유, 공동체, 그리고 희망의 공간입니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도시의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를 생각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요즘 지구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이 모빌리티쇼 참가에 진심인 이유 (0) | 2025.04.21 |
---|---|
스탠리, 세계 최초 스테인리스 진공 보온병의 탄생 (0) | 2025.04.20 |
오픈 AI, 지브리 열풍 (0) | 2025.04.19 |
카피바라,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 잡다. (0) | 2025.04.18 |
나무 그린 화가들 (0) | 2025.04.16 |